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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미디어

제목 [국제신문]경남 통영 연화도
작성자 부산여행자클럽 작성일 2009-06-23 14:45:42
경남 통영 연화도
흘러가는 연꽃섬, 그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연화봉 오르며 뒤돌아본 연화리 앞바다.
보덕암 화장실에서 본 용머리.
1998년에 창건된 연화사 전경.

 
  경남 통영의 연화도 용머리 해안은 마치 한마리의 거대한 용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가는 듯 하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결국 망망대해에 뜬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라는.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나와 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일상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한다. 가족과 친구 동료 지인 등 내가 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 언제 어떻게 생성됐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는 `끈`의 끈끈함에 대한 고마움에 새삼 미소를 띠어보기도 한다.

이제는 케케묵은 표현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임철우의 유명한 소설 제목처럼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중얼거리며 섬을 향해 떠난다. 섬에 가서도 과연 `인간은 결국 외로운 섬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나약한 자의 푸념을 되풀이 할지, 아니면 `다시는 그 같은 부질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돌아오게 될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蓮花島)는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유명한, 경상도권 다도해의 대표적인 섬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굳이 연화도를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은 이 섬이 부산에서 하루 만에 다녀오기도 딱이거니와 그 아름다움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여름이 깊어지지 않아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섬보다는 조용히 걷기 좋은 섬을 택한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겠다.


■카페리를 타고 `연꽃섬`으로

경남 통영시 욕지면 연화리라는 행정구역명을 가진 연화도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통영여객선터미널로 가야 한다. 한림페리5호와 욕지아일랜드호라는 2대의 욕지도 행 카페리선이 하루 6차례 운항하는데 이 배를 타고 가다 중간 기항지인 연화도에서 내린다.

 
카페리호의 특성상 선박의 1층은 주로 욕지도로 가는 차량이, 2층에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한다. 주말에는 늘 붐비기 때문에 50분 남짓한 배타는 시간은 왁자지껄하다. 초행길 여행자라면 객실 바깥의 갑판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여행의 운치를 좀 더 진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11시 통영항을 출발한 카페리는 오른쪽 미륵도, 왼쪽 한산도 사이의 항로를 따라 미끄러져 나아간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올망졸망한 섬들이 잇따라 고개를 내민다. 30분쯤 가면 왼쪽으로 비진도가 보인다. 섬 2개가 가운데 해수욕장으로 연결된 신비의 섬 비진도. 여름 휴가철엔 섬에서 해수욕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다. 사실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뱃길 주변의 풍광을 보는 재미도 크지만 무엇보다 `배를 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카페리는 50분 만에 연화도 선착장에 닿는다. 북쪽의 우도와 연화도 사이에 난 좁은 항로를 비집고 들어가 닿은 연화도의 첫 인상은 여느 어촌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한적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범함을 감추고 있는 평범함이랄까.

연화도는 글자 그대로 `연꽃섬`이다. 400여년 전 연화선사가 이 섬에 들어와 3명의 비구니와 함께 수도를 하다가 입적하자 그의 유언대로 섬 앞바다에 수장 했는데 그곳에서 연꽃이 피어올라 `연화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통영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해서 살았던 섬이기도 하다. 욕지도나 사량도 등에 비해 섬은 크지 않지만 그만큼 살기 좋았다는 뜻일테다. 조선 연산군때 억불정책으로 인해 사명대사가 쌍계사를 거쳐 남해 보리암에 은거해 수도를 하던 중 그를 찾아 전국을 헤매던 보운(사명당 여동생), 보월(처), 보련(연인) 등 속가에서 인연을 맺었던 3명의 여승과 상봉한 후 이 섬으로 옮겨와 함께 기도하며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그만큼 불교적 색채가 강한 섬이다.


■바다는 멈춰 있는데 섬이 흐른다

 
연화도는 경이로운 섬이다. 면적이 불과 1.57㎢에 불과한데 해안선의 길이는 12.5㎞나 된다. 그만큼 길쭉한 형태의 섬이라는 말이다. 100여 가구에 220여명의 주민이 주로 어업과 농업을 하며 살고 있다. 이 섬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데는 배에서 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비경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3시간 내외면 섬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 수 있을만큼 부담도 없어 많은 여행객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물론 자리돔 참돔 등 자연산 어종을 기대하는 `태공님`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연화도여객선매표소에서 해안을 따라 오른쪽 끝을 보면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 옆에 가장 높은 곳인 연화봉(215m)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물론 매표소에서 곧바로 마을을 통과해서 초등학교를 지나 동두마을과 연화사 쪽으로 오르는 콘크리트길도 있지만 한적하게 섬 여행을 즐기기에는 오른쪽 정자 옆으로 난 등산로를 타는 것이 좋겠다. 완만한 오르막 등산로는 험하지 않아 유치원생이라도 부모와 함께 오를 수 있을 정도다. 잠깐씩 쉬면서 연화리 본촌마을과 그 앞 포구의 양식장을 바라보면 몇명의 여행객을 싣고 귀항하는 소형 쾌속정이 푸른 바다를 가르고 있다.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돈 여행객들의 환호성이 뿜어낸 열기가 하얀 포말에 뒤섞여 나그네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30분 가량 오르면 연화봉 정상 300m 못 미친 곳에 있는 언덕에 작은 정자와 쉼터가 있다. 서쪽으로 4㎞ 떨어진 큰 섬인 욕지도가 선명하다. 하지만 연화도의 상징인 용머리 해안은 아미타대불이 서 있는 봉우리 정상에 올라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섬 줄기. `통영 8경`의 하나인 연화도 용머리다. 동행했던 친구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이 친구는 해외여행을 자주는 하지 못하지만 평소 기회만 있으면 해외로만 가고 싶어하던 터였다. 그는 이어서 "그런데 저 용머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다는 가만히 있는데 섬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 그것 참, 신기하네!"라며 다시 한번 나름대로의 감상을 덧붙인다. 그랬다. 연화도 용머리 해안은 이름 그대로 마치 대양을 향해 끝임없이 헤엄쳐 가는 한 마리의 용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연화봉 정상에서 잘 정비된 계단을 타고 100m만 내려서면 사명대사와 연화선사가 기도를 했다는 토굴터가 있다. 자그마한 돌집 안에 사명대사 동상이 안치돼 있어 느낌을 극대화시켜 놓고 있다. 용머리 해안을 계속 보면서 길을 내려오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아래 벼랑가로 가니 보덕암이 나온다. 동쪽에 석조 해수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보덕암은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연화도가 불교 유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의 불자들이 기도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4층 누각인 보덕암 맨 위층 법당 앞에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은 연화봉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와 달리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맨 끝 `네바위` 아래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촛대바위를 보기 위해서는 보덕암 1층 마당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용머리 해안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보덕암에서 다시 갈림길로 올라 선 후 동쪽으로 가야한다. 보덕암 위 화장실은 창으로 용머리 해안 풍광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멋진 경치를 가진 화장실이 아닐까.

 
평지나 다름 없는 산책로를 따라 거닐면 마치 용의 등에 올라탄 채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동두마을을 들렀다가 만물상 등을 둘러보며 용머리 해안 끝부분까지 갈 수 있다.

다른 여행객들이 연신 내던지는 감탄사들을 뒤로한 채 길을 따라 연화리쪽으로 걷다 보면 `십리골` 골짜기에 앉아 있는 절 하나가 보인다. 연화사다. 쌍계사 조실을 지낸 고산 스님이 지난 1998년 8월 개창한 절이다. 유서깊은 절집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대웅전과 8각9층석탑, 2층 누각 등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고 갖가지 야생화가 절집을 뒤덮고 있어 꼭 들러볼 만하다.


■"허덜시리도 안 사 주는기라"

연화사 일주문 앞에서 작은 보자기에 한 되가 될락말락한 만큼의 완두콩을 넣은 꾸러미 5~6개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경상도 출신인 기자조차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만큼 극심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할머니는 넋두리처럼 계속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해 들어보니 대충의 뜻은 알겠다. "서메 와시모 섬 종자들도 좀 쳐다보고 곡석들도 좀 사 조야지. 섬 꼬라지만 보고 가모 뭐하노. 그거는 반쪽배끼 못 본기라. 요새 온 아낙들은 허덜시리도 안 사 주는 기라."

팔순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그렇지 않아도 거동이 불편한지 지팡이를 곁에 놓고 질펀하게 길바닥에 앉아 있던 이 할머니는 콩을 팔고 싶었던 것이었다. "할머니, 한 봉지 주이소. 얼마 드릴까예." 친구가 호주머니에 손을 옮기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반색을 하며 "이거는 중국산 아인기라. 내가 저기 저 밭에서 키운기라. 저게 밭에 있는 스님한테 물어보모 내 말이 거짓말이 아이라꼬 갈키 주끼라"면서 묻지도 않은 중국산 이야기부터 꺼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혹시 중국산 아니냐고 물어 봤으면 이러실까 싶어 맘이 짠하다. 한 봉지 2000원. 2봉지를 샀다. 그렇게도 푸념을 늘어놓던 할머니 얼굴에 웃음끼가 돈다. 그 많던 주름도 잠시지만 살짝 펴진다. 고된 노동의 대가를 받은 아름다운 미소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시라"는 인사에 할머니는 "부처님이 복 주실끼라"며 화답한다. 길을 따라 내려서면서 작은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까지 말이 없던 친구가 한마디 한다. "할머니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하실까?"

선창가 용머리횟집에서 3만 원에 회 한접시와 매운탕을 곁들인 식사를 한 뒤, 통영항으로 타고 갈 배를 기다리며 낙조를 바라본다. 2000원 어치 완두콩과 3만 원짜리 식사…. 도시인의 호사다. 섬에도 사람이 산다. 그런데 버젓이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외롭고 힘들때마다 "내가 마치 섬이 된 듯하다"며 고독을 씹을 수 있단 말인가. 섬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그 할머니와 같은 섬사람들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그렇다고 이생진의 시 `섬, 그리고 고독`까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섬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입력: 2009.06.11 21:03 / 수정: 2009.06.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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