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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제신문]남해~사천, `한국의 아름다운 길` 드라이브
작성자 부산여행자클럽 작성일 2009-06-23 14:40:57
남해~사천, `한국의 아름다운 길` 드라이브
처절하게 아름다워 차라리 슬픈 길, 그 길에서 화해와 용서를 배운다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항에서 삼동면 물건리로 넘어가는 물미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어느 바닷가 마을의 풍경.


`길을 떠나자 아무런 미련 없이 두 눈에 맺힌 이슬일랑 떨구어 버리고

비가 오잖아 슬픔을 대신하듯 흐느끼는 빗방울에 내 갈 길은 어디메뇨

이 큰 아픔일랑 이 긴 방황일랑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에게서 떠나버려

두 줄기 빗방울이 철없이 온다해도 나의 발길 멈추는 곳 아픔의 끝이겠지`


 
  2개의 작은 솔숲이 다정히 `손`을 맞잡은 모양은 남해섬 전체(지도 참조)의 악수하는 듯한 모양과 닮았다.
1980년대 중·후반 인기 절정을 달렸던 가수 이선희의 4집 앨범에 수록돼 있는, `길을 떠나자`라는 노래 가사 전문이다.

지역 주민들이 `보물섬`이라 칭하는 경남 남해도와 사천 서부 해안길을 돌아보기 위해 달려가는 차 안. 카스테레오 앰프를 타고 1평 남짓한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얼핏 들으면 곡조가 경쾌한 듯 하지만 좀 더 귀 기울여 보면 애절하고 서글프다. 노랫말 중간 중간 `슬픔` `아픔` 같은 단어들까지 들어 있는 데다 이선희 씨 특유의 애잔한 음색까지 어우러져 실제보다 더 애절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길을 떠난다. 필설로 설명하기 힘든 답답하고 슬픈 가슴을 훌훌 털어내 보고 싶어서. 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지만 치유할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어떤 답을 얻고 돌아오리라 기대하고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떠난다. 단지,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기 위해 일상을 잠시 떠나는 것이다.

 
 
이왕이면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길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잡은 코스가 한국도로교통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3개 구간을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는 남해~사천 일주. 사실 사천만을 한 바퀴 도는 코스지만 짙어가는 녹음과 서서히 데워지는 이 땅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코스다. 게다가 `100선`에 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구간들이 숨겨져 있다. 체험이나 먹을거리 찾기는 생략했다. 그냥,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에.


■벚나무 터널길 지나 `보물섬`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1시간 20분 정도면 닿는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에서 내렸다. 하동 금오산을 서쪽에 끼고 남해 방향으로 1002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보면 하동군 금남면 어느 마을 어귀에서 짙푸른 녹음에 싸인 왕벚나무 터널길을 통과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챔피언에 오른 창선-삼천포대교 야경.
4월의 주인공이었던 새하얀 벚꽃잎은 봄비와 해풍을 타고 훨훨 날아갔다. 꽃잎 떠난 빈자리를 초록의 나뭇잎들이 채우며 TV 광고에서나 봤을 듯한 벚나무 터널길을 만들었다. 드라이브를 하는 운전자들에겐 더 없이 시원함을 안겨 주는 길이다. 곧 이어 도로 왼쪽이 확 트이며 바다가 드러난다. 육지의 하동군과 사천, 바다의 남해 섬으로 둘러싸인 사천만과 그 안의 작은 섬들이 잔잔한 물결을 뽐내며 반긴다. 저 멀리 사천 와룡산 자락도 눈에 든다.

10분쯤 갔을까. 한국의 `금문교`라고 불리는 남해대교. 노량의 거센 물길에 뿌리내린 붉은 주탑 2개에 걸린 철선을 생명줄 삼아 길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갈색 바탕 현판. 길은 아름다운데 간판은 왠지 어색하다. 이곳은 400여 년 전 피 튀는 전장터였다.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쟁터였던 노량해협을 건너 보물섬 남해로 접어든다. 1002번 지방도를 버리고 19번 국도로 옮겨탔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왼쪽 아래 바닷가 마을 노량리에는 남해충렬사가 있다. 하지만 노량리에서 더 유명한 것은 음식점마다 내놓는 멸치젓갈이다. 몇 년 전 함께 갔던 한 친구는 멸치젓갈에 밥을 비벼 두그릇이나 `뚝딱` 비우곤 했다.

 
  하동군 진교면에서 남해대교로 가는 1002번 지방도의 벚나무 터널길.
반듯하고 정갈하게 정비된 19번 국도를 따라 `보물섬` 남해로 깊숙이 들어간다. 고현면 차면리를 지날 때 오른쪽으로 살짝 들어가면 관음포 이순신 장군 전몰유허지가 있다. 인근에는 말 그대로 `이순신 장군이 떨어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락사(李落祀)`도 있다. 관음포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최초로 육지에 안치된 곳이다. 솔향이 진한 숲길을 걸어 첨망대에 오르면 관음포 앞바다가 훤하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영웅`이 떠난 자리. 이곳에 앉아서 영웅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한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던 그 영웅.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라는 말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난 그 사람도 `영웅`일까. 역사가 답을 줄 것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워 차라리 슬퍼라

`이락사`에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가면 고현면 소재지다. 이곳에서 남해읍 쪽 19번 국도를 택하지 않고 `보물섬 삼베마을` 안내판을 보며 우회전, 77번 국도로 옮겨탄다. 마침내 `보물섬의 보물`이라고 하는 절경의 해안도로에 접속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길은 한적하다. 너무 빨리 달리는 것 보다 규정속도인 시속 60㎞ 안팎으로 달리며 차창을 활짝 열면 갖가지 시름도 바람에 훌훌 날아가는 듯하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77번 국도를 벗어나 남해군 서면으로 접어드는 1024번 지방도를 타게 된다. 서면 소재지인 서상리의 남해스포츠파크를 비껴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타고 남면으로 접어들어 힐튼골프리조트를 거친다. 남해군을 대표하는 골프 및 스파 리조트다.

 
  가장 아름다운 길은 마음 속에 있다. 꿈속을 달리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의 남해 일주도로에서 바라본 이 아름다운 풍경도 마음 속에 꼭꼭 숨겨 놓은 내 고향마을 동구 밖 길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으랴. 섬이 안개 속에 피었다.
1024번 도로를 놓치지 말고 해안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휘돌면 남해대교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만난다. 소위 `남면 해안도로`라 불리는 길. 국내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코스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 탁 트인 여수만과 건너편 여수반도가 손짓한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를 달리다 문득 모퉁이를 크게 돈다 싶더니 급경사면에 크고 작은 논들이 계단식으로 빼곡히 들어선 낯익은 풍광이 펼쳐진다.

남면 해안도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명승 제3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 가천다랭이마을은 마을 뒷편의 응봉산(왼쪽)과 설흘산(오른쪽)을 연결하는 등산도 2~3시간이면 할 수 있고 마을 아래 암수바위를 둘러볼 수도 있다. 워낙 유명한 마을이라 긴 설명은 필요 없겠지만 오는 6월 13일과 14일 `제3회 다랭이 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기억해 두면 좋겠다. 손 모내기와 써레질 체험, 손 미꾸라지 잡기, 손 그물치기 등 다양한 농촌체험을 마을의 대부분 민가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숙박하며 즐길 수 있다.

가천다랭이마을을 지나 좀 더 내려오면 `석방렴 체험`으로 유명한 `홍현리 해라우지마을`을 지난다. 이 마을 앞바다는 앵강만. 그 건너편으로 멀리 남해의 진산인 금산 암봉들이 햇빛에 반사돼 금빛을 내뿜고 있다.

당항리 삼거리에서 금산 상주 방향으로 우회전, 1024번 지방도를 타고 계속 가다 보면 남해읍에서 상주로 향하는 19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고 곧바로 우회전해 상주해수욕장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얼마 가지 않아 만나는 금산 보리암 입구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오른쪽의 앵강만 해수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해발고도가 낮은 해안길을 내달리게 된다. 살짝 언덕이 나오면 잠시 차를 멈춰보자. 앵강만 한가운데 나란히 떠 있는 형제섬과 그 뒤로 설흘산의 자태가 은빛 바닷물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낸다.

다시 차에 올라 상주 방향으로 가다보면 살짝 고개를 넘기 전에 오른쪽 포구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개메기 잡기 체험과 개메기국으로 유명한 두모마을. 그 앞바다에 떠있는 노도는 서포 김만중의 최종 유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고개를 넘으면 부산 해운대와 쌍벽을 이룬다는 남해 대표 해수욕장인 상주해수욕장. 제철이 아닌 상주는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으로 인해 조용히 솔밭을 걷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맙다.

상주를 뒤로 하고 송정해수욕장을 거쳐 미조면 송정리 미조항 입구에 닿으면 3번 국도 시점을 알리는 한반도 모양의 현판이 있다. 이곳에서 삼동면 물건리까지 이어지는 일명 `물미해안도로`는 비록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에서 만큼은 어느 길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길 아래로 펼쳐진 바다에 옅은 연무가 끼었다. 안개는 크고 작은 섬들을 반쯤 삼켜 버리며 바다 위의 섬이 아니라 하늘에 둥실 떠 오른 `천공의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몽환(夢幻)의 길이다. 그 길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몽환적이다 못해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 차라리 슬플 만큼. 그 전에 미조항에서는 멸치잡이배를 타고 어로를 하는 선상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요새 한창이다.

`물미해안도로`의 끝자락인 삼동면 물건리는 해안을 따라 300년 이상된 팽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후박나무 등 40여 종의 나무가 1.5㎞나 늘어서 숲을 이룬 `물건리방조어부림`으로 유명하다.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된 이 방조어부림은 말 그대로 태풍과 염해를 막고 물고기가 모이도록 하기위해 조성된 인공숲이다. 또 물건리 언덕에는 남해 독일마을이 자리잡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실 이 마을은 볼거리라기보다는 엄연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새 삶의 터전이지만 유럽식 주택들과 골목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찾는다.

`물미해안도로`는 지났지만 3번 국도는 계속된다. 이윽고 닿는 곳이 남해 본섬에서 창선도로 넘어가는 창선교. 그 아래 지족해협은 `죽방렴`을 이용한 원시어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섬과 섬이 이어졌다고 육지가 될 수 있나

창선교를 건너 창선도로 접어들면 길은 확 넓어진다. 이제는 사천시가 된 삼천포항을 향해 달려가는 3번 국도는 창선도 끝자락에서 또 하나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간판을 살짝 보여주는 가 싶더니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다 위로 내달린다. 창선-삼천포대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서 당당히 종합 대상을 차지한 바로 그 길이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실제로 이 다리는 창선도에서 늑도를 잇는 창선대교와 늑도와 초양섬을 잇는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초양대교, 그리고 모개섬과 삼천포항을 잇는 삼천포대교 등 4개의 다리가 이어진 3.4㎞짜리 복합 교량이다. 모든 교량의 공법이 저마다 다르고 늑도와 초양섬을 잇는 늑도대교 오른쪽 아래에 백로 외가리 서식지로 유명한 학섬이 있어 5개의 섬이 이어진 길이라고 한다. 중간 초양섬에 터 잡은 초양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 하지만 흔히 사진으로 보는 창선-삼천포대교의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교 끝나는 곳 정면에 솟은 각산 전망대에 올라야 이 다리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삼천포대교를 건너니 해질녘이다. 사천 실안동 해안도로를 타기위해 대교 끝에서 오른쪽 램프웨이로 돌아 내리면 대교공원에 닿는다. 눈앞의 삼천포대교가 변화무쌍한 총천연색 야간조명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아름답다. 비록 인공적인 아름다움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넋을 빼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원에는 은방울자매가 부른 옛 가요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데 때마침 스피커를 타고 구성진 자락이 흐른다.


"비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님이여…"


저녁 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사천 `실안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생각한다. 섬과 섬이 다리로 이어져 육지에 닿았다고 그 섬이 육지가 됐을까. 아니다. 그저 육지에 닿은 섬일 뿐. 섬은 섬으로 남아야 제 맛이다. 그저 육지에 닿게 해준 그 길에 고마워할 뿐이다. 해안도로 중간 전망 좋은 곳에 섰다. 왼쪽 저 멀리 창선-삼천포대교가, 방위상으로는 서쪽인 정면 저 멀리에는 아침에 지났던 남해대교가 제 각각 반짝이는 조명을 밝히며 다가선다. 불빛들이 `길 가는 나그네야. 인생길은 어떻게 걸어 갈래`라며 물어온다. 글쎄….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그러고 보니 남해도의 지도 모양이 사람끼리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형상을 띠고 있다. 화해. 용서. 그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입력: 2009.05.28 20:34 / 수정: 2009.05.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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